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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그 이후?
2008년 11월 15일 (토) 16:40:06 편집국 gold@fntoday.co.kr

‘신주유주의’의 미국이 무너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미국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환호성을 지를지 모르겠다. 물론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말하면서 이 위기는 극복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던 사람들 중 소수는 지금의 경제 환란을 00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마녀사냥을 부추기려고 할지도 모른다.


엄청난 세금으로 노동, 복지, 분배에 힘쓴 케인즈주의의 비능률성, 비역동성, 비성장성, 실업을 비판하고 등장한 레이거노믹스, 신자유주의는 한 동안 세계를 주도한 압도적 대세였다. 가진 자들의 욕망을 부채질하여 시장의 역동성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좋게 보면 희망이요, 나쁘게 보면 탐욕인 욕망을 규제, 조정하지 못한 대가가 이번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과 금융의 위기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상품은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이익이 될 때 시장에서 거래되고 자신의 이름값을 한다. 이런 기초적이고 단순한 관계에서는 쌍방의 욕망이 긍정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욕망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다.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며 자신을 희생하려는 ‘욕망’에 불타오르지는 않으며 오히려 희생과 용서, 배려를 위해서는 불타오르는 나의 욕망들을 누르고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욕망은 권리의 무한한 나열은 될지언정 거기에 의무는 없다. 파산한 금융회사의 CEO들과 수많은 금융기법을 만든 애송이 학자들은 투자된 욕망들을 어떻게 하면 뻥튀기를 할 것인가에만 골몰한 채 ‘욕망으로 가는 전차’에 군불을 때기 바빴다. 이런 추악한 탐욕의 본성을 ‘도덕적 해이’라는 몽롱한 단어로 담아 낼 수 있을까? 그들에게 권리는 있고 의무는 없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계약의 맹점이다.


선하지 않는 욕망을 이타적인 시스템으로 관리하려던 사회주의의 실패는 이 시기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시장의 실패에 대한 해답이 (욕망의 또 다른 주체인) 정부의 강력한 개입, 국유화라고 답하는 유치함은 이제 없어야한다. 정부도 국가도 시장에 편입되어 있고 하나의 단위로 기능하는 시대이다. 이런 체제에 국유화, 보호무역으로 초점이 이동된다면 국가 간, 민족 간, 경제블록 간 무한한 경제전쟁과 실제적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 블록과 블록 사이의 경제 전쟁, 무력충돌이 높아가는 시기에는 혁명의 기운이 높아가고 있음을 주장하며 ‘세계정부’를 꿈꾸는 수많은 혁명가들의 선동이 세계 도처에서 뿜어져 나올 수 있다. 벌써 미국 공산당은 오바마에게 찬양가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혹시 미국이 사회주의의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나온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말이다.


물론 역사 발전의 법칙을 정식화한 마르크스주의의 패러다임에서 볼 때 자본주의 이후는 사회주의다. 마르크스의 법칙에 따르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를 의미하는 사회주의 다음은 공산주의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주장을 비웃고 조롱했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패망을 통하여 역사는 사회주의 다음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이로써 마르크시즘의 허상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시장과 계약이 파멸한 곳과 시대에는 무엇이 나타날 것인가? 가능한 시나리오를 극단적이고 단순하게 그려보자면 엄격한 도덕과 사랑과 거룩함, 평화가 온 세상을 덮는 지상 낙원이 그 하나요, 사기, 부패, 살인, 강도, 힘 등이 세상을 뒤덮는 깡패 세상이 다른 하나일 것이다. 전자가 인간의 자발적 힘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를 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 (의미는 좀 다르지만)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갈파한 갈렌의 말처럼 인간의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장경제의 커다란 흐름도 케인즈주의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잘못 운영되었다고 해서 시장과 계약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누가 시장경제체제를 부인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폐해에 학을 띤 사람들이 이것을 막아줄 제 3자의 역할을 정부에 기대하려는 심리가 이용되어 자신도 모르게 통제와 막강한 권력을 당연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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