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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살림은 처음이지?
2018년 05월 10일 (목) 18:01:19 황순유 칼럼리스트 happypure@hanmail.net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

그 사이에서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에 기죽은 남자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세상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없고 모두 억울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여자인 게 억울해요? 엄마인 게 억울해요?”

21세기의 며느리는 20세기 며느리와 다르게 살고 싶다. 21세기 엄마는 20세기 엄마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아이와 함께 꿈꾸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아이와 독립된 나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21세기의 이상한 나라는 꿈과 희망의 세계이기를….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이의 행복을 심지 않은 부모도 없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라고 주문처럼 흘리는 말들이 씨앗이 되어 행복의 뿌리를 내리려면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를 웃게 하고 꿈꾸게 하는 보통 엄마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10회 연재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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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뛰어든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해 신기한 모험을 하기 시작한다. 한 남자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한 여자도 낯선 나라에 도착해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시집이라는 원더랜드에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아침 6시 20분이면 늘 출근을 하셨다. 결혼 전 스물다섯 살까지 내가 보고 자란 모습이다. 항상 정확한 시계와 같았다. 그래서 우리 집 하루의 시작은 TV 화면 조정이 끝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전날 술을 마시고 들어왔어도 아침이면 기분 좋게 일어나 밥을 먹었다. 아침은 하루를 여는 기분 좋은 출발점이었다. 내 기억 속 세상의 모든 아침은 개운함, 상쾌함 그 자체였다.

모든 집의 아침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하던 내가 결혼했다. 헉! 우리 집과는 달랐다. 결혼은 다른 문화와 만나는 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상상은 자유.

내가 먹을 복을 타고났는지,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모두 음식 솜씨가 기가 막히게 훌륭하다. 하지만 그 표현법이 정반대다. 한 분은 “내가 해물탕을 끓였는데 너무 맛있어. 먹다가 기절하면 어떡하지? 낙지 넣고, 꽃게 넣고, 대하를 열 마리나 넣고, 대합에, 미더덕에… 진짜 맛있네. 빨리들 와~” 이렇게 들썩들썩하다.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육개장을 끓인다고 끓였는데 별로야. 넣을 거 다 넣었는데도 맛이 안 난다. 고사리도 제일 좋은 것으로 넣었고 고기, 버섯, 대파, 무, 숙주 다 들어갔는데 니 맛인지 내 맛인지 알 수가 없네. 맛없다고 흉보지 마래이~”라고 말씀하시니, 맛보기도 전에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된다. 두 분 중 어느 쪽이 친정엄마고, 어느 쪽이 시어머니일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적어도 70년대생들의 결혼 생활은 두 집안의 만남이었다. 남녀의 로맨스로 시작된 관계지만 결혼을 결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서로 다른 집안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쪽도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두 집안. 다름을 틀림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지옥이다. 하지만 원더랜드에 들어선 여자는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도 희한한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결혼 생활이다.

종갓집이었던 친정은 정말 집안일이 많았다. 가을에 있는 시제까지 합치면 일 년에 제사만 11번이라 거의 매달 친척들이 몰려왔고, 손이 큰 우리 엄마는 작은집 식구들이 돌아갈 때 들려 보낼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서 가끔은 제사 음식 준비하고 있을 때 놀러 나가는 게 신경 쓰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열여덟에 시집와서 지금 나이 먹도록 하는 게 이 일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하기 싫어도 평생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뭐하러 시집도 가기 전에 이걸 하냐? 결혼하기 전까지는 빤스 한 장도 빨지 마라. 이딴 거 안 배워도 시집가면 다 한다”라고 하셨다. 지금도 명절날 친정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너희들이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게 보기 좋아.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계속 얘기하고 놀아라”라고 하신다. 남들이 보면 영락없이 싸가지 없는 손녀들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만난 자리가 ‘이깟 설거지’ 따위에 끊어지는 게 더 싫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참으로 현명하시다.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을 미리부터 연습하기에는 젊음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한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결혼 전 나는 집안일은 정말 안 했다. 그랬으니 평생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결혼에 대해서 큰 고민 없었을 수밖에. 물론 결혼하고 나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현명하신 우리 할머니의 말씀대로 하기 싫어도 밥하고 빨래를 해야 했다. 아무리 아파도 집안일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일까. 낯설고 어색하고 서투른 일투성이였지만 단 한 번도 결혼을 물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행히 시어머니도 우리 할머니처럼 생각이 깬 분이셨다. 내가 스물다섯에 결혼했으니, 아이를 하나둘 낳을 때까지도 친구들은 미혼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시어머니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아기 잠깐 봐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는 결혼해서 시어머니 모시며 4남매 키우는 동안 친구들을 못 만났어. 그게 수십 년이라 참 아쉽더라. 며느리한테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라고 하셨다.

물론 모든 여성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결혼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댁이라는 원더랜드는 꿈과 환상의 나라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내 딸도 원더랜드에서 더 신기하고 멋진 체험을 하게 될 날이 올 거다. 원더랜드의 희한한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나도 굳이 집안일을 미리 체험시키고 싶지는 않다. 현명한 우리 할머니처럼.

필자소개

황순유 

경인방송 FM90.7mhz ‘황순유의 해피타임907’ DJ 

KAA(한국아나운서아카데미) 강사

더 퓨어 컴퍼니 대표, 20년 경력의 프리랜서 진행자.

저서)황순유(2018),《77년생 엄마 황순유》, 도서출판씽크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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